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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이터널스 - 무엇이 문제인가

by Doolim 2021. 11. 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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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제목을 달긴 하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이 영화가 문제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는 괜찮다. <원더우먼 1984>처럼 액션에 맥아리가 하나도 없거나, <베놈>처럼 서사와 캐릭터 구축이 맛이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MCU의 새로운 페이즈의 서막을 열 영화로서 기대에 부응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글쎄다'이다.

 

이터널스는 재미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나 후기와는 달리, 이터널스라는 영화 자체가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걱정했던 만큼 액션의 분량이 적지도 않다. 적어도 10분에 한 번씩은 액션씬이 나오고, 그 액션이 합을 더럽게 못 맞춰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나오는 것 치고는 개별적 캐릭터의 이야기가 완전히 길을 잃었거나 개연성을 잃지도 않았다.

그러나 2시간 30분짜리 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마음은 뭔가 허전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갑자기 거대한 떡밥을 뿌리면서 끝난 엔딩 때문일 수도 있고, 헛헛한 쿠키 영상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기대감을 모았던 한국인 배우 1호 마블 히어로인 마동석의 갑작스런 퇴장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찜찜한 이 기분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도대체 이 영화의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액션? 서사? 캐릭터?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전반의 액션의 질은 우려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이런 상업 액션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마블의 영화다. 클로이 자오가 액션을 개판치도록 마블 차원에서 좌시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스태프 구성에 어느 정도나 마블에서 관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을 맡았을 때 가장 우려되었던 바가 바로 스케일 큰 액션을 과연 다룰 수 있느냐였던 만큼 그러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이 부분은 그냥 내 억측이고, 클로이 자오 감독 스스로의 역량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만큼 처음 해보는 액션영화임에도 대오각성하여 액션씬에서도 일가를 구축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액션씬은 이 영화의 결점이 아니다. 딱히 기억에 남는 시그니처 장면(시빌워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엘리베이터 액션이나, 샹치의 버스 액션같은)은 없지만, 기겁을 할 만큼 질 떨어지는 장면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캐릭터 구축은 어떤가? 이 부분은 역시 나쁘지 않지만 역시 영화 한 편으로 10명에 달하는 이터널스들에게 생동감을 부여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군데군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장면이 노출된다.  핵심적인 주역인 세르시와 이카리스의 서사는 나쁘지 않지만, 그 주위를 맴도는 스프라이트의 입장에는 잘 공감이 가지 않고, 테나나 길가메시, 드루이그, 파스토스, 킨고, 마카리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사실 이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드루이그의 고뇌는 짐짓 깊어 보이지만 이 또한 갑작스레 해소되어 버린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이터널스라는 이름과 설정이 주는 무게감과 달리 이들의 강력함이 별로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되는데 이는 다음 단락에서 다루겠다.

이야기의 서사성은 나쁘지 않지만, 여기서도 헛점이 노출된다. 일단 불필요한 플래시백이 너무 많다. 액션이 볼만해지면 갑자기 플래시백이 나오고, 심지어 이런 식의 연출이 한 두번이 아니다. 

심지어는 감독이 중점을 두고자 하는 그 인물간의 감정선이라는 것도 잘 이해하기 힘들다. 이카리스는 왜 세르시를 떠나야만 했는가? 왜 이카리스는 에이잭을 등져야만 했는가? 에이잭은 그냥 이카리스가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에 세르시를 리더로 선택한 것인가? 왜 그 리더는 포스토스, 킨고, 드루이그일 수는 없었는가? 왜 그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도 세르시와 이카리스는 서로 이끌려야 하는가? 마카리와 드루이그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마카리라는 인물이 청각장애인으로 설정되어야 할 영화적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PC 쿼터제 때문에? 감독은 인물간의 감정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이 수많은 의문에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들의 배경 서사는 조각난 플래시백을 통해서만 표현되기 때문에 관객은 인물에 이입하여 일관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기 힘들다. 

 

본질적인 문제

이 영화에는 이렇게 수많은 문제점이 잠재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감독이 그 문제들을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클로이 자오 감독이 먼저 이터널스를 연출하고 싶다고 자진해서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새삼 의아해진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기본적으로 마블의 히어로 영화, 나아가 이 영화의 설정에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여러 빌런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빌런들의 목적과 동기는 각자 다르다. 진화체 데비안츠는 이터널스들과 나아가 셀레스티얼들을 파괴하고 싶어한다. 이카리스는 이터널스가 셀레스티얼의 계획을 망치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멀티 빌런은 이미 다른 마블영화에서도 몇 번 시도되었던 방식이고, 잘만 짜면 단순한 1인의 빌런보다 훨씬 다채로운 플롯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런데 진화체 데비안츠는 어떤가? 혼자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헤매다가 갑자기 허우적거리면서 최후의 전장에 등장하더니, 길가메시며 이카리스에게 협공을 당할 때도 당당하던 포스와는 달리 테나 한 명에게 두드려 맞고 허무하게 죽는다.  이터널스들을 죽여야 하는데, 그 이터널스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황당한 상황임에도 데비안츠는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등장한 그 순간 데비안츠는 누구랑 싸워야 하는지 일순간 혼란스러워 하는 것처럼까지 보인다.  그 와중에 이카리스는 애초에 전투원도 아닌 포스토스에게 완전히 제압당하다가 갑자기 날아오르고, 날아오른 것도 맥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터널스의 계획에 타의로 동참해 버린다. 영원히 사는 강력한 이터널스인 스프라이트가 짱돌 한 방에 기절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캐릭터 간에는 파워 밸런스라는 것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다.  드래곤볼도 아니고 누가 더 세고 누가 더 약한지가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히어로 영화에서 강함의 관계는 개연성 그 자체이다. 애초에 이카리스가 그렇게 최강인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도 킨고가 중간에 이탈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카리스가 혼자 반기를 들든 말든 이터널스가 분열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데비안츠도 그렇다. 인물들의 대화에 의하면 이카리스는 이터널스 중 최강이라고 하는데, 그도 절절매던 데비안츠를 테나는 (비록 데비안츠의 방심을 이용했다고는 하나)일시에 제압하고, 정작 그 테나는 방금 전 5분도 안 되어 이카리스에게 처발리고 있었다.  무슨 가위바위보도 아니고, 이런 관계를 보면서 관객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감독은 인물들의 서사에만 집중한 나머지 히어로 영화로서 가장 중요한 설정놀음의 중요성을 망각해 버린 듯하다. 이터널이 짱돌 한방에 기절한다거나, 비전투원인 드루이그가 '최강'이라는 이카리스에게 기습당하고 떡이 되게 두드려 맞았는데 아무 상처도 없이 멀쩡하게 바로 복귀한다거나, 도대체 누가 더 센지 알 수 없게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강함을 설정한다거나, 사실상 이터널스들을 배신하고 떠난 킨고를 에필로그에서 다른 이터널스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점 모두 감독이 세르시와 이카리스 등 주요인물의 서사 말고는 설정 배경 처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총평

이 영화를 보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지막에 내가 말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애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예쁜 화면은 많지만, 그것들은 어쩐지 뭔가 과시적인 느낌이고, 정작 마블의 새로운 페이즈를 여는 영화로서 디테일한 설정에 공을 들였어야 할 부분은 전부 적당히 생략되어 지나간다. 그 와중에 그 다음 마블 영화들을 위한 떡밥을 깔아야 하니까 마지막 5분과 쿠키 영상에 '이게 뭔데 씹덕아'싶은 정보의 홍수를 다짜고짜 풀어 놓아 버리는 것은 덤이다. 

 

그래서 일반 관객 대상 추천지수는 ★★ 이다.  이 영화는 자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 너무 많고, 마블 팬이 아니라면 굳이 2시간 반씩이나 보고 있어야 할 영화는 아니다.  그 시간이면 볼 수 있는 다른 훌륭한 액션영화들이 너무 많다. 

마블 팬 대상 추천지수는 ★★★ 이다.  후속작 관련 떡밥을 너무 많이 풀어놔서 이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그 다음 작품에서 설명되지 않는 점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MCU의 행보를 지켜볼 관객이라면 재미가 있든 없든 이 영화를 이악물고 보기는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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