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리치는 누구인가?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라고 해도 아마도 딱히 외국의 영화 감독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낯설 법한 이름이다. 누군가는 '가이 리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이 리치가 감독한 영화라는 것들 자체의 편차가 워낙에 심해서, 그 영화들을 다 봐놓고도 이게 다 한 감독의 영화인지 몰랐을 관객도 있을법하다. 다음은 지난 10년간 가이 리치가 감독해 온 영화들이다.
<젠틀맨>
<알라딘>(윌 스미스가 지니로 나오는 그 알라딘 실사판이 맞다)
<킹 아서: 제왕의 검>
<맨 프롬 엉클>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셜록 홈즈>
그래도 모르겠다면, 지금의 가이 리치를 있게해 준 초창기의 영화들도 있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일단 <알라딘>과 이 영화를 비교해 보거나, <맨 프롬 엉클>과 <셜록 홈즈>를 비교해 봐도 이게 같은 감독의 영화인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상업 영화를 만들 때는 무난하게(그래서 그런지 알라딘 빼고는 모두 흥행성적이 별로 좋지 않고, 알라딘조차도 평론가들로부터는 상당히 혹평을 들었다), 자기 색깔의 영화를 만들 때는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많은 인물을 만들어 내서 각 인물들이 각자의 플롯 안에서 놀게 하다가 막판에 모두 모이게 만드는 형태의 연출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는 초창기 대표작인 <스내치>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모두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가이 리치 스타일과 마틴 스콜세이지 스타일의 화법
두 감독 모두 케이퍼필름에 강점을 가진 감독이다. 케이퍼필름이란, 쉽게 말해서 악당이 주인공인 영화로서 악당의 범죄를 다루는 영화다. 우리에게 친숙한 케이퍼필름 전문 감독으로는 <범죄의 재구성>과 <도둑들>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이 있다.
다만 두 감독이 케이퍼필름을 대하는 방식은 약간 다르다. 전자는 범죄를 유쾌한 대소동처럼 취급한다. 그 범죄의 와중에 수많은 인물이 죽고 다치지만, 블랙코미디스러운 분위기가 항상 전면에 서 있다. 그래서 그의 케이퍼필름의 특징은 매우 빠른 화면 전환,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인물들 간의 대화, 슬로우모션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속도감 있는 액션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마틴 스콜세이지의 경우 어두운 범죄의 이면과 타락해 가는 인간 군상들을 조금 더 진중하게 다룬다. 그런 그가 연출한 작품들 중에서도 물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처럼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영화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마틴 스콜세이지는 보다 느린 템포에서 범죄와 악의 본질에 대해 다룬다. 그의 영화에서 범죄자는 응분의 대가를 받게 되거나, 큰 상처를 입게 된다(그런 면에서도 <더 울프~>는 그의 영화치고는 악당인 주인공이 결국 권토중래에 성공하는 듯한 특이한 영화다).
두 감독의 화법이 만나면
이 영화는 가이 리치의 영화면서도 가이 리치의 케이퍼필름같지 않다. 걸출한 배우들이 각 인물을 연기하고, 각 인물들의 사정이 이리저리 교차하며, 종국에는 하나로 모아져 가는 것은 그의 대표작 <스내치>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종국에 하나로 이어져 가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느린 템포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는 추격씬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격투라 할 만한 장면도 거의 없다시피하다. 영화는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의식적으로 자제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두 사내의 우아한 대화로만 진행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이미 제작된지 한참 지났지만 <스내치>에서 그가 보여줬던 짜릿한 속도감과 둔탁한 액션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두 남자가 위스키를 마시며 우아하게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면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영화를 봤을 것이다.
물론 감독의 고충도 이해는 간다. <알라딘>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밋밋한 상업영화이고(솔직히 그와 비슷한 명성의 감독 아무나 데려다 놓고 이 영화를 찍었어도 다 이 정도는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톰 후퍼 빼고.), <스내치>는 오래된데다가 비슷한 플롯을 이미 2번이나 사용해서(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군상극을 연출하면 자기복제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자기복제면 또 어떤가? 도대체 무슨 영화를 연출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그저 그런 감독들이 넘쳐 나는 판국에 '복제'할 수 있는 자기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강점이다. 나는 이 영화가 스내치에서 인물들만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 영화라고 했어도 즐겁게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자기 복제의 혐의를 피하고는 싶으면서 자신이 가장 잘 다루고 익숙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무언가 상충되는 두 의지를 결국 조화시키지 못한 채 가이 리치도 뭣도 아닌 두루뭉술한 영화를 만들어내 버렸다. 여전히 그 특유의 위트는 영화 내내 살아있지만, 아 글쎄 위트는 다른 영화에서도 이미 많이 봤다니까.
총평
일반 관객 대상 추천지수는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는 가이 리치스럽지 않을 뿐이지 괜찮은 케이퍼 필름인 데다가, 무려 매튜 맥커너히에 휴 그랜트다. 두 배우가 그냥 위스키 한 잔을 나눠 마시는 씬으로만 1시간을 떼워도 영화 한 편은 나올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은 대작하지 않는다.
가이 리치 감독의 팬 대상 추천지수는 ★★. 차라리 스내치를 한 번 더 보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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