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연식이 된 영화이고,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1) 무려 뮤지컬 명가 디즈니의 영화인 데다가, (2) 캐스팅도 빵빵하고, (3) 영화 소개 자체는 도저히 안 볼 수가 없게 만들어져 있으니, 조만간 국내 상륙 예정인 디즈니플러스에서도 낚이는(?) 시청자들이 많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은 특집처럼 리뷰해 보았다.
화려한 캐스팅!
일단 굉장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조니 뎁과 메릴 스트립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배우 안나 켄드릭과 에밀리 블런트의 가창력까지 감상할 수 있다니? 이 캐스팅만 봐서는 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의 기본 소재는 망해도 중간은 간다는 고전 동화의 각색이다(물론 요새는 디즈니가 연속으로 신나게 대차게 동화 원작 영화를 말아먹고 있어서 이것도 옛날 얘기긴 하다).
심지어 제작사는 무려 <겨울왕국> 시리즈 등으로 뮤지컬 영화 장인의 뚝심(?)을 보여준 디즈니다. 이래서야 어지간해서는 망하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 당시 골든글로브 상에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은 그러한 기대를 가볍게 충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뛰어난 음악!
뮤지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뮤지컬 영화가 일반 영화와 구분되는 가장 큰 포인트는 당연히 '음악'이다.
물론 일반 영화에도 음악은 쓰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영상의 외적인 요소로 기능할 뿐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 편의 성공한 뮤지컬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음악'이 좋아야 한다.
애시당초 음악이 좋지 않으면 대사와 시퀀스의 중간중간 계속해서 노래가 튀어나오며 흐름이나 끊어먹는 뮤지컬 영화 따위를 볼 이유가 없다. 뮤지컬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상 그 자체보다도 음악을 사랑하며, 이러한 점은 사실 스토리나 기술 면에서 크게 참신할 것도 없는 <레 미제라블>이나 멀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같은 영화의 흥행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말하자면 뮤지컬 영화의 절반은 좋은 뮤지컬 넘버와 이를 소화하는 배우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미 브로드웨이 뮤지컬부터 시작해서 몇 편의 뮤지컬 영화에도 출연하여 입지를 다져온 배우 안나 켄드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역배우들부터 시작해 대배우 메릴 스트립까지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보여준다(오히려 우리 나라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부각되어 홍보된 조니뎁의 가창력은 사실 그냥 그런 수준이다...).
이렇듯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의 절반인 좋은 음악과 좋은 배우라는 기본조건을 무리없이 충족시킨다.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전개...?
그럼 뮤지컬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어떤 요소들이 책임지는가?
이는 다시 영화 근본적인 요소인 연출과 내러티브, 영상미와 기술 등으로 돌아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측면에서 이 영화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각색한 이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 구성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이 이상하게 집착하듯 사실상의 결말 다음에 다시금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이상한 구조를 따르고 있다. 말하자면 영화 내의 모든 복선과 갈등이 수습되거나 봉합되고(혹은 봉합된 것처럼 보이고) 대단원을 향해 나아가 관객들이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 다시 또하나의 위기를 불러오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TV 드라마에서는 적합한 것일지 몰라도 한정된 시간 내에 관객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지배해야 하는 영화의 예술에서 적합한 방식은 아닌 듯하다.
영화 관객은 선형적인 이야기구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영화들 중 극히 드문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기승전결식의 선형적 서사전개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는 관객의 감정을 최고조까지 이끌어 올렸다가 한 번에 해소되도록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말하자면 기승전결전결식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데, 관객은 이미 앞의 기승전결 부분에서 대부분의 감정을 소모하고 안락한 영화관 의자에서 편안한 결말을 기대하게 되므로 뒤에 이어지는 전결 부분은 지나치게 늘어진 사족에 불과하다고 느끼게 된다.
인물들이 맞게 되는 사건 또한 일관성도 없고 당위성도 부족하다. '숲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는, 이것이 현실 세계가 아닌 이상은 어떤 서사적인 당위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겪게 되는 사건과 사고는 다분히 우발적으로 매우 불친절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러한 사건과 사고들이 대체 영화 속에서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이런 현상은 특히 기승전결 후의 또다른 전개구도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청률이 좋아서 연장편성을 했더니 하루가 다르게 막장으로 치닫는 TV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전반부가 고전 동화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차용하고 각색하면서 비교적 단순하고 정치한 서사구조를 완성했다면, 후반부는 실력 모자란 작가가 마음대로 가필한 각본을(그리고 심지어 그 작가가 한 명이 아닌 것 같다) 실수로 가져다 쓴 것 같은 느낌이다.
총평
그렇다면 이 영화를 대체 보라는 것이냐 말라는 것인가라는 실존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결국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뮤지컬 넘버에 관해서는 언제나 옳다고 말해도 좋은 디즈니의 음악 프로듀싱만을 믿고 일련의 뮤지컬 시퀀스만 감상하고 올 것이냐(사실 각각의 뮤지컬 부분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다), 전형적인 서사구조와 영화로서의 기본기를 갖춘 다른 영화를 볼 것이냐는 관객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일반 관객 대상 추천 지수는 ★★,
뮤지컬 영화 애호가 대상 추천 지수는 ★★★.
p.s 아, 우리 나라에서는 개봉 당시 신나게 조니뎁을 팔아먹었만 조니뎁은 극히 짧은 시간 등장할 뿐이다. 정신 사나운 이 이야기의 후반부를 허덕이며 따라가다보면 그가 등장했었다는 사실은 가볍게 잊어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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