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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들

PC함에 대하여

by Doolim 2020. 7. 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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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PC)이란 무엇인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란 인종, 성별, 나이, 직업 등에 대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공정해야 한다는 포괄적인 사상이다. 그 내용으로 봐서는 당부를 따지는 게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하다.

PC함이란 결국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에 따라 적극적인 차별 조치 또한 어느 정도 용납된다. 즉, 이상적으로는 위와 같이 일정한 요소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는 공공연히 만연하게 모든 분야에 걸쳐 차별이 이뤄져 왔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계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보정을 위한 우대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논의되었던 여성임원 할당제가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게 PC 라고...?

그런데 PC함이라는 지상과제와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는 어느 정도 논리적인 합리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최근 이러한 적극적 우대조치가 교조주의로 흐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배우 안소니 마키(MCU의 팔콘)는 최근 흑인 영화라고 해서 흑인만 스탭으로 쓰겠다는 것은, 백인 영화라면 백인 스탭만 써야 한다는 의미와 다를 것이 없다며 이것 또한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최근의 PC함은 이렇게 합리성을 넘어서서 그냥 단순히 차별 받던 소외계층을 무조건 우대만 해 주면 된다는 형식논리 또는 '이 만큼 해줬으니 난 차별주의자가 아니지?' 라는 다수자들의 자기위안거리로 빠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의 영상물이나 게임에 LGBT가 많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LGBT 캐릭터가 반드시 하나씩은 들어가야 한다는 식인 것이다.

 

미국 시트콤 드라마 <브루클린 나인나인> 시즌8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이러한 PC한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한 백인 형사가 흑인 형사에게 무엇이든 우쭈쭈 우쭈쭈 하면서 자신은 '당신들이 받았던 차별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작위적인 태도를 보이자, 흑인 형사가 넌덜머리를 내는 장면이 있다.  이는 '이것 봐라. 나는 이렇게나 당신의 처지와 심경에 공감하니까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자기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백인들에 대한 풍자로 보인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PC함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드라마지만(솔직히 마지막 시즌에 와서는 그게 좀 과해 보이기는 했다...), 그런 드라마에서조차 '이런 작위적 PC함은 필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아무 데나 소수자를 집어 넣는다고 해서 모두가 평등해 지는 것은 아니다.  PC함은 먹이 던져 주듯, 선심 쓰듯 퍼 준다고 해서 성취될 수 있는 가치는 아닌 것이다.

 

맥락 없는 PC질은 그냥 변명일 뿐이다

하지만 LGBT 캐릭터가 맥락없이 들어가고, 영화 시사회에서 감독이 은근슬쩍 자기가 얼마나 양성평등과 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지 흘려 준다고 그것이 '평등을 위한 우대조치'가 될까?

 

사람들이 영화나 게임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LGBT 캐릭터에 대해서 짜증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호모포비아여서가 아니다. 그냥 맥락 없이 갑자기 자 이 캐릭터는 LGBT라고 하니 짜증을 내는 것이다. 영화사에서도 최근에는 수많은 게이 레즈비언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관객이 그들이 LGBT캐릭터임을 인식하지도 못하거나 인식했더라도 딱히 혐오감을 느끼지 않은 사례도 무수히 존재한다.

 

오히려 최근에 문제되는 것은, LGBT나 소수자가 단지 못 만든 영화나 못 만든 게임을 위한 방패처럼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영화나 게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욕을 먹으면 사람들이 아직 LGBT에 대하여 깨어있지 않다 운운하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주워섬길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는 그냥 못 만들어서 욕을 먹는 것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작금과 같이 다짜고짜 LGBT와 소수자를 아무데나 우겨 넣고, 못 만들었다고 욕 먹으니까 호모포비아며 인종차별주의자 핑계를 대는게 과연 그들의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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