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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들

파맛 첵스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by Doolim 2020. 7. 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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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맛 첵스 연대기

예전 시리얼 첵스의 제조사인 켈로그에서 하나의 이벤트를 했었다. 바로 초코첵스 왕국의 대통령(왕국인데 왜 대통령을 뽑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을 뽑는 선거. 후보는 초코첵스와 파맛첵스였다. 아마도 켈로그 마케팅팀은 사람들이 파맛첵스를 고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빌런 역으로 파맛첵스를 후보로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추이는 심상치 않았다. 투표 종료일 전날까지도 파맛첵스가 압도적인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누가 봐도 조작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초코첵스의 갑작스러운 막판 역전으로 선거는 마무리됐고, 그렇게 왕국을 공화국으로 바꾸고자 했던 쿠데타 시도는 무산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6년이 경과하고 파맛첵스가 복권(!?)되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열광했다. 그러나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는 시식 후기들을 보니 역시나 파맛첵스는 먹을 물건이 못 되었다. 아니, 적어도 우유에 말아 먹는 시리얼로서 먹을 수 없는 상품임은 분명했다. 우유에 말아 먹기에는 파 향이 너무 진했고, 맥주 안주 정도로나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새로 출시된 파맛 첵스의 광고만 봐도 켈로그 스스로도 이 제품이 잘 팔릴 거라고 기대하고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약속을 이행한 켈로그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물론 호의적이라고 그 사람들이 다 파맛 첵스를 사먹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듯 파맛 첵스의 복권은 기업이 아무리 멍청해 보이는 약속이라도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교훈

이 사태는 비단 기업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같이 시시껄렁하고 일반 소비자로서는 별로 관심도 없는 교훈 외에도,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첫째,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제도일 뿐 최선의 결과를 담보하는 제도가 아님에도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를 혼동한다. 쉽게 말해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파맛 첵스의 출시에 투표한 사람들이 정말 파맛 첵스를 먹어 보고 싶어서 투표한 것일까? 아마 대부분 장난이었을 것이다. 켈로그의 가장 큰 실수는, '인간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다'라는 고전경제학적 가설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최근의 심리학 또는 경제학 연구결과들은 인간이 결코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향이 단순히 차기 첵스나라 왕을 뽑는 선거에서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정치적 결단의 순간에도 발현된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허경영을 진지한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하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선 때마다 허경영에게 투표하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투표자들 그 누구도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권리를 일단 부여하고 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게 설계되어 있다. 

둘째, 이행할 의사가 없는 약속은 안 하는 게 좋다. 이행할 수 없는 큰 약속을 하느니 이행할 수 있는 자잘한 약속들을 전부 지키는 편이 낫다.

이건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끼리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은 오래 기억하지만 긍정적인 사건, 특히 타인의 긍정적인 사건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 

셋째, 인터넷에는 미친 놈들이 많으므로 직접 투표를 유도하는 마케팅을 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이 아니라고 해서 미친 놈들이 없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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