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미 공개 후 기존 글로벌 1위였던 오징어게임을 넘어선 조회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옥과 관련된 이런저런 떠오르는 썰들을 풀어 보았다.
이건 내가 멋대로 떠올린 썰들이니까 어디 가서 정설처럼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옥 관련주?
재미있게도 오징어게임 흥행 당시에는 오징어게임 관련주가 크게 검색되지 않았지만, 지옥의 경우 흥행에 성공한 조짐이 보이자마자 '관련주'가 초유의 연관검색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뒤질세라 언론들도 앞다투어 지옥 관련주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테마주가 다 그렇듯이 반짝 상승했던 소위 관련주들은 줄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중이다.
지옥 관련주로 주로 꼽히는 종목들을 보면, 첫 번째로 제이콘텐트리(종목코드 036420)가 있다. 제이콘텐트리는 드라마 지옥을 제작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모회사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쓰기 좋아하는 기자님들의 말로는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다트(http://dart.fss.or.kr)에 공시되는 제이콘텐트리의 분기보고서에 의하면 제이콘텐트리는 엄밀히는 클라이맥스스튜디오의 모회사가 아니다. 클라이맥스스튜디오의 지분 95%는 주식회사 제이티비씨스튜디오가 들고 있고, 그 제이티비씨스튜디오의 지분 53.8% 가량을 제이콘텐트리가 들고 있으니 제이콘텐트리는 클라이맥스스튜디오의 할아버지회사다.
물론 엎어치나 메치나이고 테마주 투자한다는 사람들이 모회사인지 할아버지회사인지 알바겠냐마는 찌라시가 아니라 기사를 쓰려면 최소한 용어는 좀 구별해 가면서 쓰자. 모회사와 할아버지회사는 엄연히 다르다.
또 다른 지옥 테마주는 주식회사 아이오케이컴퍼니(소위 아이오케이, 종목코드 078860)이다. 아이오케이는 얼마전 지옥 주연 배우인 김현주 씨가 소속된 회사인 와이엔케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가 합병까지 했으니 관련주라는 논리이다. 왜 유아인 씨나 박정민 씨의 소속사는 테마주가 아니냐!? 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만...두 회사 모두 상장사가 아니다. 게다가 아이오케이나 클라이맥스스튜디오와 달리 두 회사의 소유구조가 불분명하다. 모회사 내지 할아버지회사를 추적해서 살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닌 것. 참고로 11월 23일 현재 전일 대비 -9.11%가 빠졌다.
다음 지옥 관련주는 주식회사 덱스터스튜디오(소위 덱스터, 종목코드 206560)이다. 드라마 지옥의 시각특수효과를 맡은 업체라고 한다. 그나마 이 주식은 금일 강보합세로 장을 마감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이 관련주 놀음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제이콘텐트리 산하의 제작사라는 것이다. 모두 익히 알다시피, 제이티비씨스튜디오와 제이콘텐트리 산하에서 JTBC로 송출되는 콘텐츠를 주로 제작하는 제작사들은 올해와 지난해 부부의 세계 정도를 빼고는 흥행을 신나게 말아먹고 있었다(<괴물>은 이 와중에 나타난 걸출한 드라마지만, 이마저도 흥행 측면에서는 썩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본가인 JTBC가 아닌 넷플릭스의 손을 빌어 마침내 올해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행보는 얼마 전 디즈니플러스 구독 방법과 관련된 포스트에서 잠깐 내가 언급했던 것과 같이 JTBC 스튜디오가 슬슬 콘텐츠 판매 채널의 다변화를 본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JTBC 계열의 제작사가 만든 작품들은 이제까지는 주로 티빙을 통해서만 서비스해 왔다. 물론 넷플릭스에 공급하는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괴물이라든가, 아는형님이라든가), 아무래도 사실상 콘텐츠를 공동으로 발주하고 있는 티빙의 눈치가 보이는 것인지 대부분의 콘텐츠를 티빙 독점으로만 풀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즈니플러스에 현재 입점해 있는 많은 한국 콘텐츠들이 공중파나 tvN 출신이 아닌 JTBC 스튜디오의 작품들이라는 점, 그리고 이번 <지옥>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공급 건에서 보듯 JTBC도 슬슬 외국의 OTT에 대한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JTBC의 콘텐츠가 질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비슷한 포지션의 tvN 작품보다 항상 평가절하를 당해왔고, 그래서 그런지 JTBC가 자체편성한 드라마와 예능들은 요새 계속해서 쓴잔을 마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JTBC가 콘텐츠 판매 채널의 다변화를 시도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넷플릭스에까지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게 되었다. 오히려 자기만의 독립된 OTT가 없었던 JTBC로서는(아무래도 티빙은 JTBC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보는 배우 김현주?
워낙에 작품 하나하나에서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유아인이나, 연기를 하는 건지 그냥 본인인 건지 모를 생활형 연기에 탁월한 강점을 보이면서 관객들에게 점차 인상을 각인시키고 있는 박정민과는 달리 김현주가 굉장히 오랜만에 연기에 복귀한 듯한 기분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김현주는 이 드라마 직전에도 JTBC(JTBC, 또 너야?)의 <언더커버>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었고, 작년에도 OCN의 <왓쳐>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심지어 언더커버에는 지진희, 왓쳐에는 한석규가 나와서 출연배우들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드라마도 아닌데 아는 사람만 아는 대차게 흥행에서 망한 드라마들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집밖에도 안나가고 줄창 OTT로 드라마만 봐서 엔터테인먼트 주식들이 유례없이 호황을 누렸다던 그 2020-2021년에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괴물>이 흥행에서 실패한 이유와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드라마 자체가 걸작이든 아니든 일단 현대의 시청자들은 쉴새없이 사이다가 아니라 고구마가 터지는 클래식한 스릴러를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도 김현주는 지옥의 흥행으로 다시한번 얼굴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배우는 아닌데, 이렇게 과거의 하이틴스타들이 계속해서 연기를 하고 그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재미있다. <신라의 달밤>에서의 김혜수의 모습에서 지금의 김혜수를 연상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배우의 얼굴과 연기에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로새겨지는 시간흔 같은 것이 생기나보다.
연상호 감독, 재기 성공?
지난 지옥 1화의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연상호 감독은 상업영화를 찍게 되면서 뭔가 끝없이 폼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본인은 조금 더 진득하고 날선 사회에 대한 비판을 영상에 담아내고 싶은 것 같은데, 상황이 그런 건지 어쩐건지 찍게 되는 영화는 <부산행>, <반도> 같은 상업영화들이 되어 놔서 뭔가 갑자기 우겨 넣는 듯한 형편없는 신파 클리셰가 반복되는가 하면 설정 붕괴에 관한 비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특히, <염력> 같은 작품은 어떻게든 감독이 하고 싶었던 사회비판물과 상업영화를 한 자리에 우겨 넣다 보니 탄생한 괴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주의적 성향과 상업 감독으로서의 사명감이 잘못 결합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보여주는 듯한 영화였다.
아무튼 지옥에서 연상호 감독은 풍부한 상상으로 이뤄진 설정과 배경이지만 그래도 현실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 세계를 제시한다. 시작하자마자 나타나는 지옥의 사자들은 초현실적이지만, 그것은 마치 잠시 지나가는 재난처럼 이야기를 내내 지배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야기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저 알 수 없는 지옥의 사자들의 모습과 의도를 자기네 입맛대로 재단하려고 하는 인간들 간의 치열한 권모술수와 눈치게임의 대립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범죄자에 대한 사적 제재라는 사이다패스에 늘 목말라하는 현대 인간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감독은 든든한 넷플릭스의 지원 하에 자신의 작가주의적 성향과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이라는 두 가지 일견 조화되기 어려운 목적을 결합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이미 지옥 시즌1이 웹툰에서 다룬 내용을 대부분 다뤘다고는 하는데, 원작자 본인이 감독인만큼 시즌2 제작 가능성도 희망해 볼 만하다.
역시 똘아이 연기가 가장 어울리는 유아인
물론 유아인의 연기가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유아인의 연기가 점점 똘아이 쪽으로 굳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근 그의 대표작들을 살펴 보자. <베테랑>의 조태오는 말할 것도 없고,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 <버닝>의 종수에 이 드라마 지옥에서의 정진수 의장을 살펴 보면, 물론 미친 방향은 제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전부 제정신은 아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와 영화들 사이에 다른 작품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대중들이 기억하는 유아인은 어딘가 무서운 눈을 희번덕거리는 똘아이로 점점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들 외의 캐릭터가 인상에 남지 않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있겠지만, 유독 유아인이 똘아이로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들의 캐릭터만 기억에 남는다는 건 그런 유형의 캐릭터들만 잘 소화해서 그런 게 아닐까?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어쨌든 모름지기 게이, 약쟁이, 정신병자를 연기해야 오스카 상을 탄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옥에서 정진수 의장을 연기하는 유아인을 보면 똘아이 연기를 하도 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쪼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라 사실 좀 보기가 그랬다. 평소에는 웅얼거리듯이 나지막한 말투, 그러다가 아무도 예기치 않는 순간에 갑자기 높아지는 언성과 희번덕거리는 눈길 등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과 어투가 묻어나온다. 찰떡이기는 한데...이제는 평범한 유아인도 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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