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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Shows

은밀한 회사원 - 릭앤모티+ 보잭 홀스맨?

by Doolim 2021. 11. 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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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넷플릭스 공식 웹사이트

 

오랜만에 만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지난 10월경 서비스 시작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은밀한 회사원(Inside job)은, 음모론의 단골 소재인 '그림자 정부'에 대해 다룬다.

 

그림자 정부란 무엇일까?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등 여러 가지 비밀 조직의 이름과 함께 거론되는 그림자 정부 음모론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사실 눈속임에 불과하고,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별도의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엘리트들만을 위한 세계를 꿈꾸며 세계에서 벌어진 온갖 전쟁, 기아, 자연재해들을 좌지우지하는 신묘한 조직이다. 일설에는 미국 대통령이나 마크 주커버그 같은 저명인사들도 모두 그림자 정부 내지는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 조직에 속해 있다고 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런 무시무시한 음모론을 유쾌한 블랙 코미디로 다루는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들은 실제로 그러한 비밀 조직에서 일하고 있으며, 뭔가 어설프지만 세계를 뒤에서 움직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바로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어둠의 조직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릭앤모티+보잭 홀스맨

이 애니메이션의 넷플릭스 공식 소개에 의하면,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릭앤모티>와 <엑스파일>의 만남이라고 한다. 정신을 쏙 빼놓는 정신 나간 캐릭터들의 입담과 끝없이 발생하는 전세계 규모의 사고들을 생각하면 확실히 릭앤모티 특유의 블랙유머가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엑스파일이라...이 작품은 엑스파일 같은 정극보다는 오히려 <심슨 가족>의 아이러닉한 에피소드들과 <보잭 홀스맨>에 나오는 어딘가 하나씩 망가진 캐릭터들을 떠오르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과 엑스파일 간의 연관성이라고는 음모론을 다룬다는 점 뿐인데, 그런 식이면 <내셔널 트레저>도 <엑스파일>과 유사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비밀조직에서 승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성 없는 젊은 천재다. 그런 그녀의 파트너로 사회성은 만점이지만 아무 능력이 없는 브렛이 낙하산으로 투입된다. 이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그녀의 팀원들이라고는 약쟁이, 전쟁광, SNS 중독자, 섹스중독자(?) 등 뭔가 한 군데 나사가 빠진 인간들(?) 뿐이다. 그녀는 이런 팀원들을 이끌고 과연 원활하게 비밀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의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 주인공 일행은 모두 어딘가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인간들 뿐이다. 이런 캐릭터 설정은 <보잭 홀스맨>의 주인공 보잭 홀스맨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그러고 보니 작화도 어딘가 비슷한 것 같다).  <보잭 홀스맨>에서도 주인공과 주인공의 일행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입히고, 화해를 한 듯 했다가도 다시 더 큰 상처를 입히는 행동들을 반복한다.  

 

<보잭 홀스맨>에서도 느낄 수 있듯, 현대의 시트콤은 더이상 <프렌즈>의 친구들이나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의 친구들처럼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아 주면서 위안을 주는 풍경을 모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잭 홀스맨>이나 이 <은밀한 회사원> 같은 작품들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소재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인간관계를 탐구한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프렌즈>의 사건들처럼 처음에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듯 하다가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해피엔딩이 되지는 않고, 모든 어이 없는 사건들에서 교훈을 얻지도 않는다.  <보잭 홀스맨>과 <은밀한 회사원>같은 작품에서는 해피엔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웃긴 시트콤의 패러독스

<은밀한 회사원>같은 블랙 코미디에 대한 위와 같은 평가를 보면 대체 이런 작품들을 왜 보나 싶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에서 시트콤이란 '웃긴 것'인데, 왜 이런 블랙 코미디류의 작품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시트콤은 즐거운 쇼이기에 앞서 드라마다. 드라마에는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항상 모든 사건에 대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말이 나타나고, 상처 입은 모두가 치유를 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전통적인 시트콤은 그렇게 의도적으로 현실성을 무시해 왔다. 웃는 얼굴의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 같은 것은 굳이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웃는 얼굴 뒤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것이 '웃기지 않은' 극이 되는 것일까? 이 <은밀한 회사원>을 비롯한 블랙 코미디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은밀한 회사원>의 동료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에다가 주인공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주인공을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는 주인공의 가족도 구제불능이다.  주인공이 이뤄놓은 것들은 항상 부정되고, 엉뚱한 인간들이 나타나 공을 채간다. 언뜻 봐서는 도저히 이 극이 어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없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이런 유형의 시트콤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프렌즈>같은 전통적인 시트콤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즐거운 것은 내가 그 시트콤을 보고 있을 때 뿐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 나는 다시 별로 재밌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은 일상으로도 돌아와야 한다. 즐거움은 일순간이고, 사실 드라마는 나의 삶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드라마와 나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고, 나의 삶은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트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여준다. 현실은 분명 엿 같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당신이 처한 상황만큼이나 엿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엿 같은 세상에 대한 염세주의에 빠지는 대신 어떻게든 시니컬한 유머와 끊임없는 발버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물론 항상 보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현실 세계도 그렇다). 그러나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아주 미약하게나마 주인공의 상황에는 개선의 여지가 생겨간다. 

 

이 시트콤이 위안을 주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시트콤에서 대책없이 주인공을 사랑하는 유쾌한 친구들과 주인공이 힘을 합쳐 해피엔딩을 이뤄내는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면 우리는 거기서 오히려 위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항상 빵빵 터지는 펀치라인을 들이대는 친구도 없고 해피엔딩도 대개의 경우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밀한 회사원>은,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위안이 된다.  그래도 내가 저 지경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 지경에 빠진 주인공조차도 어떻게든 살아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밌냐고?

뭔가 딴소리만 실컷 한 것 같은데, <은밀한 회사원>은 특이한 소재(주인공이 비밀조직을 처단하는 정의의 사자가 아닌, 비밀조직 그 자체)와 매력적인 캐릭터(엉망진창이라 오히려 정이 가는)로 무장한 유쾌한 블랙코미디다. 1회 분량도 애니메이션 시트콤 치고는 긴 편인 25분 가량이라 분량도 적당하고, 아직 시즌1밖에 없어서 시간 날 때 금방 볼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볼 때 단 하나 우려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넷플릭스의 변덕 때문에 시즌2가 캔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온갖 병신 같은 콘텐츠는 다 만들어 내면서 정작 잘 뽑아 놓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즌2를 캔슬해 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틴에이지 바운티 헌터 시즌2 내놓으라고...), 이 시트콤도 그 짝이 날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장르 자체가 마이너하고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라 우려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반 관객 대상 추천 지수는 ★★★. 분명 재미있는 시트콤이지만 가끔 고어하고, 심슨가족이나 릭앤모티, 보잭 홀스맨 같은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다면 분명 진입장벽이 있다.

반면, 당신이 위 애니메이션들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추천지수는 ★★★★. 연타석으로 시트콤이란 시트콤은 전부 말아먹고 있는 넷플릭스에서 오랜만에 볼 만한 시트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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