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들은 포스터와 짧은 시놉시스만 보고도 줄거리가 전부 읽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영화들은 시놉시스에서 느낀 바와 전혀 다른 줄거리로 관객을 놀래키고는 한다.
로열 트리트먼트는 이 중 단연 전자에 속하는 영화임에도 관객에게 큰 충격을 주는 영화다.
과연 무엇이 이 영화에서 그렇게 충격적인 것일까?
넷플릭스 로열 트리트먼트 줄거리
뉴욕에서 작은 미용실을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운영하며 사는 이사벨라(로라 마라노 분)는 전형적인 당차고 씩씩한 아가씨다.
어느 날, 라바니아라는 작은 왕국의 왕자인 토마스(메나 마수드 분)가 잘못된 예약으로 인해 그녀에게 머리 정돈을 맡기게 되고, 그 자리에서 토마스는 거리낌 없고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이사벨라에게 반하게 된다.
토마스는 왕국으로 돌아와 정략결혼을 준비하게 되지만 이사벨라를 여전히 잊을 수 없었던 나머지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을 신부의 화장 및 헤어 담당자로 초빙하게 되는데...
로열 트리트먼트 결말
솔직히 줄거리를 쓰면서 이미 결말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하는 스포일러 주의:
라바니아 왕국에 도착한 이사벨라와 친구들.
이사벨라는 우연히 왕국에서 '기차길 건너편'이라고 불리는 빈촌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제대로 된 학교 시설도 없이 지내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미 사랑 없는 정략결혼에 지쳐있던 토마스는 자발적으로 그런 그녀를 돕겠다고 나서고, 둘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이렇듯 둘의 깊어가는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약혼자의 어머니(그렇다. 정작 약혼녀는 또 별 관심이 없다. 여기서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가 몰래 그들의 사진을 찍어 이를 타블로이드 신문에 뿌려 버린다.
이에 토마스의 부모는 왕국이 파산 직전이고, 그를 위해서는 이번 정략결혼이 꼭 필요하다며 이사벨라를 다시 뉴욕으로 돌려 보낸채 토마스에게 결혼을 강권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사랑없는 결혼은 싫다며 분연히 이를 거부하고, 뉴욕으로 돌아간 이사벨라에게 찾아간다.
사랑을 확인한 둘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로열 트리트먼트 평점
서두에서 이 영화가 충격적이라고 했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충격적일 정도로 아무런 놀라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놉시스대로 따라가는 영화이든, 시놉시스의 분위기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영화이든, 적어도 상업영화라고 하면 이야기에 굴곡과 반전이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로맨스 영화라면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에 대한 묘사가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굴곡과 반전이랄 게 아무 것도 없다. 더욱이 큰 문제점은 남녀 주인공이 왜 사랑에 빠지는지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첫 만남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음에도 왕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공감이 가지 않고(사실은 애초에 왕자는 이사벨라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냥 이사벨라가 예뻐서 홀랑 빠진건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심지어 이사벨라 쪽에서는 왜 왕자가 마음에 드는 것인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사벨라가 라바니아 왕국을 떠나올 때 다시 왕자를 붙잡아 볼까 망설이던 순간 뉴욕의 미용실에 불이 났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그러자 이사벨라는 그대로 홀가분하게 등을 돌려 라바니아로 떠나 당장 급한 미용실로 달려간다(?). 영화에서는 내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던 토마스 왕자가 왜 스스럼없고 당찬 아가씨인 이사벨라에게 끌리는지는 열심히 설득하지만, 이사벨라가 왜 왕자에게 끌리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사벨라는 라바니아를 떠나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조차도 왕자가 아닌 불탄 미용실을 택한 것이다.
그 와중에 그들의 사랑의 장애물은 너무나 쉽게 극복된다. 그들의 사랑의 장애물은, 비록 그것이 클리셰라고 할지라도 '약혼녀의 어머니'가 아니라 '약혼녀' 본인이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해할 수 없게도 약혼녀가 아닌 약혼녀의 어머니를 메인 빌런으로 설정한다.
왕자가 사랑인지 아니면 왕족으로서의 책임감인지를 두고 고민하려면, 그러한 두 선택지가 투영된 인물 사이에서 왕자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랑'을 투영하는 것이 이사벨라라면, '왕족으로서의 책임감'을 투영한 것은 당연히 약혼녀야 하지 않을까? 왕자가 약혼녀가 아닌 장모님에게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사벨라가 약혼을 깨는 나쁜X이 되는 걸 막고 싶었는지 약혼녀인 로렌조차도 결혼에 별다른 열의가 없는 것으로 묘사한다. 애초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가 되었어야 할 약혼녀가 이 모양이니 왕자의 선택에 무거운 결단이 실릴 리가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100분도 안 되는 러닝타임 와중에 쓸데없는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이사벨라의 친구들은 통째로 이야기에서 걷어내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 수준이며, 왕궁의 경비병도 이름을 부여 받기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무슨 영화 동아리라서 모든 단역 배우들에게 이름을 붙혀 타이틀롤에 올려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게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설정이다.
이런 무사안일한 플롯과 심심한 캐릭터에 힘입어 로튼 토마토에서는 근래 개봉작 중 최악의 평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왓챠피디아에서의 평점도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 로열 트리트먼트같은 영화는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망작'이라고 비웃는 수많은 영화들도, 적어도 그 영화 안에는 하다못해 너무 말이 안되고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5초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치 어딘가의 고전 동화책을 아무런 각색도 없이 가져온 느낌이다. 심지어 동화책 안에도 뚜렷한 악역(예: 신데렐라의 계모)이 있고 나름의 반전(예: 12시가 되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신데렐라의 마법)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서사성은 고전 동화보다도 퇴보되었다. 넷플릭스가 아무렇게나 자금을 뿌리고 있으니 적당히 평타만 치겠다는(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그 이상은 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도 엿보인다.
결국, 망하지 않는 안전한 클리셰만 따오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나도 완벽하게 클리셰만 따 오다 보니 오히려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불안정해진 것이다. 하다못해 클리셰를 잘만 따왔어도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았을텐데 따오다 마는 바람에 빌런은 애매하고, 남녀 주인공 간의 애정 서사는 취약하고, 코미디 파트는 오그라든다.
물론 이 영화의 이야기가 서사적으로 완전히 개연성을 상실했다거나 상호모순적이거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불공평한 평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서사 구조에서도 개연성 상실이나 모순점이 발견되게 각본을 쓸 수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초능력에 가까운 수준의 악필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나의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은 ★★ 이다. 이 영화를 봐도 즐길 수 있는 타겟 소비자 같은 건 아마 없을 것이다. 로라 마라노나 메나 마수드의 광팬이라면 혹시 모르겠는데, 내가 알기로 두 배우는 아직 팬덤이 강하지도 않다.
게다가 메나 마수드는 미안한 얘기지만 알라딘 때도 느낀 것이지만 연기를 못한다. 본인은 알라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디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지만(https://www.insight.co.kr/news/257713) 솔직히 알라딘의 흥행은 윌 스미스와 나오미 스콧 덕분이었지 메나 마수드 덕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에도 나는 그런 기존의 평가를 수정할 생각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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