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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프렌치 디스패치 - 영화가 저널리즘에게

by Doolim 2021. 12. 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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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회화적인 이미지의 화면들과 어딘가 향수를 자극하는 잔잔한 이야기들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웨스 앤더슨의 신작이 돌아왔다.  여전히 사실상 그 시대의 영화판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로 가득한 휘황찬란한 캐스팅과 함께. 

 

<프렌치 디스패치>는, 프랑스의 블라제라는 도시(영화 소개상으로는 가상의 도시라고 하는데, 국제코믹축제로 유명한 출판의 도시 앙굴렘을 모티프로 한 것이고 실제로 영화도 앙굴렘에서 촬영되었다)에 정착해 잡지사를 일궈낸 미국인 편집장 아서(빌 머레이)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잡지사도 폐간되게 되고, 그가 죽기 전 마지막 단행본(그 때는 마지막이 될줄 몰랐지만)에 실으려고 했던 기사들을 기자들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래는 프렌치 디스패치 관람 후 내 나름의 프렌치 디스패치에 관한 해석이다.  

 

첫 번째 기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첫 번째 이야기는 세저랙(오웬 윌슨)의 이야기다.

이 기사는 사실상 잡지 및 영화를 여는 소개 기사여서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길이가 짧고, 특별히 서사랄 만한 것이 없이 잡지사의 배경이 되는 도시의 간략한 역사와 배경을 소개하고 이야기가 끝난다.

 

 

두 번째 기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예술 섹션의 기사이다. 

기자(틸다 스윈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람을 죽여 감옥에 갇혀 있지만 놀라운 예술적 재능을 가진 죄수에 관한 내용이다.

한 예술품 거래상(애드리언 브로디)이 감옥에 갇혔다가 미술에 재능을 가진 죄수(베니치오 델 토로)를 알아보고, 그 죄수는 자신의 그림의 모델이 되어 준 여간수(레아 세이두)와 사랑에 빠지며, 예술품 거래상의 독촉에 죄수는 최후의 작품을 그에게 제공하지만 이는 교도소의 벽에 그려진 것이어서 이를 가져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거래상은 절망한다. 

 

간수와 죄수 간의 뒤틀린 애정관계,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예술을 둘러싼 블랙코미디 단편 같은 느낌이다.

 

세 번째 기사.

 

사회 섹션의 기사이다.

체스를 잘 두는 한 남학생(티모시 샬라메)이 젊은 날의 학생들이 으레 그러하듯 이유를 알 수 없는, 혁명을 위한 혁명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남학생은 원숙미 넘치는 여기자(즉, 화자인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자. 프란시스 맥도날드)와 사랑에 빠지지만, 여기자는 한창 청춘인 학생답게 혁명 따윈 집어치우고 다른 여학생과 도망가 사랑을 나누라고 한다.

 

그러나 남학생은 혁명 방송을 하는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전파 고장을 고치려다가 송신탑이 무너지면서 어이없게 사망한다.

 

청춘, 치기 어린 혁명, 어이없고 때이른 죽음.  이 기사는 '사회' 섹션이지만 정치와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 순수한 젊음의 사랑에 관한 낭만을 다룬다.

 

네 번째 기사.

 

'미식' 섹션이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미식 관련 기자(제프리 라이트)는 경찰들이 업무상 먹게 되는 간편식들을 미식의 경지로 승화시킨 경찰 요리사의 음식을 맛보러 경찰서장의 초대를 받아 경찰서로 향한다.

 

그러나 경찰서장의 아들이 납치 당하고, 납치범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어쩔 수 없이 동석하게 된다.

납치범들이 서장의 아들을 꽁꽁 숨겨 두고 있어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서장의 아들이 기지를 발휘해 요리사를 불러 달라고 하고, 요리사는 요리 속에 독을 넣어 납치범들의 아지트로 진입한 뒤 목숨을 걸고 요리를 먼저 먹어 다른 납치범들을 일망타진한다. 

사건이 끝난 후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요리사.  요리사는 동양인이었고, 그는 항상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주변으로 받아왔다고 고백한다.  기자 본인도 미국인으로서 프랑스에서는 항상 이방인이었기에 그에게 공감한다.

황당한 소동극으로 시작해서 이민자가 느끼는 생활 속의 비애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에피소드였다.

 

마지막 기사까지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편집장은 어느 하나의 이야기도 죽일 수 없다면서 모든 기사를 실어보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죽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편집장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저널리즘은, 계속된다.

 

 

영화가 저널리즘에게 바치는 경의

영화는 현대가 아닌 20세기 초의 프랑스, 출판의 도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오래되지 않은 낭만을 다루고 있다.

 

비틀린 애정, 허영, 예술에 대한 광기로 가득 찬 두 번째 기사와, 어쩌면 의미없는 열정이었지만 그래서 순수하고 낭만적이었던 젊은이의 짧은 생애를 다룬 세 번째 기사, 서장 아들의 납치라는 충격적인 대사건 이면에 감춰진 이방인의 고뇌를 들려주는 네 번째 기사까지. 

 

그 주제들은 어쩌면 모두 지금에 와서는 촌스러운 것들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지는 기껏해야 몇 십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자들의 입을 빌어, 잡지사는 폐간되지만 이야기를 빚어내는 저널리즘이라는 활동은 누군가에 의해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어떤 기사도 죽이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의를 바치는 데에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책 속의 한 장면같은 웨스 앤더슨다운 동화적인 필름이 가장 적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감독 본인도 과거 <뉴요커>잡지의 덕후였던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총평

이 영화는 확실히 흥미진진한 영화는 아니다. 네 개의 옴니버스식 이야기는 서로 전혀 상관이 없고, 액자식 구성이기는 하지만 액자의 프레임을 이루는 이야기인 마지막 단행본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사실상 별다른 기승전결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사실 놀라운 서스펜스와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들은 아니다.  심지어 미친 사이코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으며 쫓겨 다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조차도 그랬다.  감독의 영화는 영화라기보다는 연극, 연극보다는 활동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정적이다. 

그렇기에 그가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사실 어떤 주제라기보다는, 뉘앙스 내지는 분위기에 더 가깝다)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그냥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들을 예쁜 화면에 되는 대로 늘어놓은 작품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장면 미학을 사랑하는 관객 대상 추천 지수는 단연 ★★★★★.  다작을 하지 않는 감독인 데다가, 역시 이 영화에서도 전작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색채와 질감을 장면마다 보여준다.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저널리즘, 나아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경의를 갖고 있는 관객 대상 추천 지수는 ★★★★.  영화는 웨스 앤더슨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널리즘에 대한 경의를 한껏 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영화로 만들어진 저널이다.

 

시간이 훅훅 가는 액션/서스펜스/스릴러/로맨스 등 '장르'를 사랑하는 관객 대상 추천 지수는 ★★.  당신은 이 영화를 보면서 졸거나, 화를 내거나(재미가 없어서), 딴 짓을 한 후 영화가 재미 없다며 악평을 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단 한 번도 이런 사람들의 취향인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웨스 앤더슨은 대체 어떻게 매번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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