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따끈따끈한 넷플릭스의 신상 예능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머더빌>에서 배우이자 성우인 윌 아넷(그래서 매 에피소드 초반 나레이션도 이 아저씨가 직접 한다)이 노련한(?) 강력계 형사 테리가 되어 매 회 새로운 파트너들과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윌 아넷과 기타 고정배역(경찰서장, 동료형사 1 등)들을 제외한 테리의 파트너들은 실제로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건의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채 에피소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참여자가 일정한 롤을 수행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jtbc의 고전 명작 예능 <크라임씬>을 떠올리게 하는데, 머더빌의 경우 크라임씬에 비해 예능으로서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갖추고 있다.
1. 메인 스토리의 전개
크라임씬의 경우, 매 화 다른 배경의 다른 에피소드를 진행함으로써 출연자들이 매 회 다른 역할을 해야 하고, 그래서 일정한 메인 스토리의 진행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었다.
물론 크라임씬 시즌 3에 와서는 각 사건들 간에 일정한 캐릭터를 공유하거나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을 설정함으로써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전개 등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스터에그 정도 수준이었고 드라마처럼 일정한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머더빌의 경우 매 화 달라지는 게스트를 제외하면 고정배역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고정 배역을 중심으로 서사의 진행이 가능하다.
예컨대 주인공인 테리는 과거 파트너였던 로리(테리의 사무실에 그녀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제니퍼 애니스톤이다...)를 잃고 그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새로운 파트너를 받아들이는 것을 껄끄러워한다.
그리고 테리와 경찰서장은 현재 별거 중인 부부로서, 그와 경찰서장 간의 애증 어린 로맨스 관계도 에피소드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이나마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2. 전문 배우의 열연
크라임씬은 기본적으로 예능이기 때문에, 참여자들도 대개 배우가 아닌 예능인이었고(장진, 박지윤, 홍진호, 장동민, 양세형, 전현무 등), '연기'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들쭉날쭉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었다.
그러나 머더빌의 경우 극을 이끌어가는 배역들 대부분이 고정 배역인 배우이기 때문에, 매 화 등장하는 게스트들의 역량과 상관 없이 극의 서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극에서 웃음 포인트를 담당하는 것은 매 화 새로 투입되어 적응하기에 바쁜 게스트들보다는 윌 아넷의 능글맞고 허당스러운 캐릭터, 테리 형사이다. 게스트들이 예능으로서나 드라마로서나 적응하기에 바빠 제대로 된 활약을 못 보여주는 에피소드에서도 윌 아넷의 어딘가 모자란 듯한 형사 캐릭터는 매 화 시트콤처럼 꾸준한 재미를 안겨준다.
3. 공정 미스터리
추리물에는 '불공정 미스터리' 내지 불공정 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추리소설이나 추리물을 보는 독자는 실제 소설을 쓰는 작가보다 적은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추리소설의 결말부에, 실제 사건에는 등장했지만 '서술'되지는 않은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되면 어떨까? 예를 들어, 탐정이 한 호텔에 가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한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실제 인물이라면, 호텔이라는 장소를 갔으므로 오며가며 벨보이도 보고 청소부 아주머니도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사물인 소설의 한계상 탐정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다 서술하지는 않을 것이고, 중간중간의 시간대나 목격한 것들을 생략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략한 사실관계 중에서 범인을 잡을 중요한 단서나 인물이 생략되었다면? 그리고 나서 결말에서 탐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까 로비에서 스쳐 지나갔던 벨보이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던 걸 얘기했던가? 그리고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사인은 사실 독극물이 아니라 칼에 의한 자상이었지. 범인은 그 벨보이야!"
독자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추리소설가 엘러리 퀸은 일찍이 '소설을 제대로 읽고 따라온 독자라면 자신의 추리로 범인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며, 그렇지 않은 추리물은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그러한 신조 하에 소설 내에 모든 단서와 힌트를 숨겨 놓고, 마지막 결말부 이전에 독자에게 추리를 할 기회를 주는 형식의 서술로 유명했다.
<크라임씬>의 경우, 분명 훌륭한 추리 예능이지만 아무래도 출연진들이 물리적으로 찾아낸 단서만으로 범인을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불공정 미스터리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분명 힌트들은 있지만, 시야가 출연진이 찾아낸 단서와 이야기만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 뒷면에 자리잡은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이 낱낱히 확인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머더빌은 불공정 미스터리와 반대되는 의미에서 '공정 미스터리'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출연진이 확인한 단서들과 만나본 증인들의 언행, 특히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들은 모두가 하나하나 공개된다. 짐짓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려 지나가기는 할지언정 마지막 추리의 순간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은 모두 제공되는 것이다.
따라서 추리물의 팬이라면, 드라마를 따라가면서 마지막에 단서를 종합해 범인을 맞추는 쾌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 유명한 게스트들의 역량
아무래도 아이돌이나 마이너한 연기자들을 주로 게스트로 섭외해 왔던 크라임씬과는 달리, 제대로 작정하고 만든 듯한 머더빌은 매 회 화려한 게스트들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난의 한국 방문 시리즈로 유명한 코난 오브라이언부터, 추억의 할리우드 대스타인 샤론 스톤, 행오버와 커뮤니티 시리즈로 친숙한 코미디언 켄 정까지 매 화 화려한 게스트들의 천연덕스러운 입담과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1화부터 차례대로, 코난 오브라이언, 마숀 린치(NFL 선수), 쿠마일 난지아니(이터널스의 '킨고' 역으로 유명하다), 애니 머피, 샤론 스톤, 켄 정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추리물의 팬인 시청자들에게 추천
물론, 넷플릭스 추리예능인 머더빌은 어쨌든 추리 또는 예능에는 아마추어인 게스트를 데리고 만들어진 작품이므로 정통 추리물로서는 다소 단순하고, 예능으로서는 게스트의 역량에 따라 재미가 확 갈리긴 한다(개인적으로 켄 정 에피소드를 무척 기대했는데, 켄 정이 중간중간 의외로 몰입을 못하고 엄청 웃어대서 재미가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어쨌든 추리 예능이란 장르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메이저한 장르는 아닌데, 이런 작품이 넷플릭스의 기획 하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 예능은 '공정 미스터리'를 지향하고 있어서, 작품을 보면서 윌 아넷의 천연덕스러운 바보 형사(?) 연기에 빵빵 터지면서도 수사 과정을 주의깊게 지켜보게 되어 의외로 몰입감도 상당하다.
그저 제발 넷플릭스가 실컷 시즌 1 공들여 만들어놓고 조금만 반응 안좋으면 칼같이 캔슬해 버리는 만행만 그만 저질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쪼록 이 넷플릭스 예능 드라마로 인해 넷플릭스에도 지긋지긋한 좀비물과 데이트 예능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물들이 방영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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