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사이키 쿠스오.
초능력자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이제는 밈처럼 쓰이는 저 소개 대사는 만화 1권의 표지 대사이기도 하다. 위 소개말처럼, <사이키 쿠스오>는 초능력자인 주인공 사이키 쿠스오가 겪는 일상생활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그러나 사이난은 초능력자가 나오는 만화에서 으레 그러하듯 초능력자간의 배틀이나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애초에 주인공 사이키 쿠스오는 염동력, 텔레파시, 순간이동, 파이로키네시스, 변신능력 등 웬만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초능력은 대부분 구비하고 있는 최강의 인물이기 때문에 라이벌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이키 쿠스오는 과연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줄거리
라고 써 놓긴 했지만, 사실 사이키 쿠스오에는 줄거리랄 만한 것이 없다.
그 이유는 "사이난"이 일종의 시트콤인 데다가,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시트콤 치고는 우직한 주제의식(주인공의 아내 찾기)이 있고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타입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 사이키 쿠스오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오히려 그 엄청난 능력 때문에 사는 데 흥미를 잃어가 감정이 결핍된 인물이다. 그의 소망은 단 하나, 귀찮게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학교에서 괴짜이거나 이상한 인간(...)으로 손꼽히는 인물들이 왠지 모르게 그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이 놈들과 함께라면,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위기감을 느낀 사이키 쿠스오는 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일부러 그들의 위기를 모른척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놀러가자는 제안을 무시하거나 쌀쌀맞게 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를 거듭해 나갈수록 그의 주변에는 특이한 친구들만이 점점 늘어나고, 겉으로는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 속은 따뜻한 사이키 쿠스오는 그런 그들의 끝없는 바보짓들을 도저히 두고 보고 지나갈 수가 없다.
입버릇처럼 '정말이지...', '이런 이런', '나 참'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친구들과 벌이는 별난 사고들과 사건들, 어쩌면 별나지 않은 친구와의 한 때가 곧 사이키 쿠스오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사이키 쿠스오의 미덕
이 애니메이션은 시트콤의 형식을 띄고 있고, 심지어 매 1화마다 짧은 에피소드 2-3개로 나눠진다. 만화도 따로 보면 알겠지만, 거의 25권에 달하는 만화의 에피소드를 거의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3기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넷플릭스는 아예 별도로 몇 가지 시간관계상 생략한 원작 속의 짧은 에피소드들이나 캐릭터들까지 불러낸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 끝난 줄 알았지?>까지 제작했다)
이렇듯 호흡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사이키 쿠스오>는 마치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감상하듯 편하게 휙휙 볼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나는 도저히 1시간 이상 넘어가는 콘텐츠들은 못 보겠다' 싶은 현대의 시청자들에게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사이키 쿠스오>를 오랜 시간 봐도 질리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어딘가 다 나사가 빠져 있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덕분일 것이다.
대부분 사이키 쿠스오가 초능력자인줄 모르는 친구들은 항상 그의 주의를 맴돌며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벌인다.
(사실 어느 정도 사건의 대부분은 사이키 쿠스오가 초능력자이기 때문에 벌이는 자업자득스러운 사건들이기는 하다...)
중2병, 열혈바보, 완벽한 미소녀, 완벽한 바보(?), 색골 영능력자 등 개성 강한 친구들이 매 화마다 벌이는 희한한 사건들을 낄낄대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3기까지 정주행 후 입맛을 다시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이키 쿠스오 아쉬운 점
시트콤처럼 마음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딱 두 가지 있다면 이 작품이 꼴랑 3기까지밖에 없고, 심지어 3기는 사실상 엔딩 화여서 에피소드가 겨우 2개밖에 없다는 점이다. '와, 아직 3기 에피소드가 10개는 더 남았으니 한참 남았네!'하고 행복해 하며 2기를 순식간에 정주행해 버린 시청자는 시즌3를 열면서 적잖이 실망했을 법도 하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식질 상태가 엉망이라는 점이다. 말장난이 많이 나오는 원작의 특성상 애니메이션 중간에도 히라가나로 된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넷플릭스판에서는 이를 하나도 번역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매 화의 제목도 히라가나로 되어 있는데 이를 하나도 번역하지 않은 개탄스러운 성실성을 보여준다.
괜히 OTT 번역자들이 음지의 번역가들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욕을 처먹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말장난을 일일히 번역해 주는 건 기대도 안 한다. 매 화의 제목조차도 번역하지 않는 게 대체 무슨 버르장머리란 말인가?
그리고 넷플릭스가 별도로 제작해 준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 끝난 줄 알았지?>는 원작 만화 중 <사이키 쿠스오>의 애니화 당시 구현되지 못한 일부 에피소드까지 구현해 낸 작품이지만, 일부 회차의 내용이 <사이키 쿠스오> 본편 애니의 일부 회차와 약간 중첩되는 등 감상 순서가 약간 엉키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끝난 줄 알았지?>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내용은 본편 마지막 회차의 내용 약간 직후의 내용인데, 그 전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본편 애니 중간중간의 그 어느 시점이고 엄밀히는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 이후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끝난 줄 알았지?>면 이왕 오리지널 애니를 만드는 김에 시즌 3 마지막회 이후의 에필로그를 충실하게 담아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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