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 효력정지 가처분의 의의
금일(2022. 1. 14.) 서울행정법원은 서울특별시장, 질병관리청장 및 보건복지부장관을 대상으로 일부 의료계 인사들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방역패스 효력정지 가처분'이란 말 그대로 방역패스를 강제적으로 도입하도록 강제하는 행정명령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처분이다. 어디까지나 가(假)처분이기 때문에 관련 본안소송의 판결이 내려진 날로부터 30일이 지나면 효력이 상실된다.
가처분이란 원칙적으로 관련된 본안 소송이 계속 중일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의 본안 소송이란, 예를 들어 행정청에서 내린 어떤 처분이나 명령이 부당하니 이를 취소하라는 등의 취소소송을 말한다.
이러한 취소소송이 계속 중일 경우, 국민이 그 정당성을 다투고자 하는 행정처분이 여전히 효력이 살아있으면 나중에 법원에서 취소판결을 내리더라도 사실상 의미가 없을 수 있으므로 미리 효력을 정지시켜 두는 것이 가처분이다. 법원에서 취소 판결이 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지만, 가처분은 보통 2-3주, 길어야 한 달이면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가처분을 통해 효력정지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법원은 '이 처분을 살려두면 나중에 처분이 취소되더라도 당사자들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을 때' 가처분을 받아준다.
다만, 가처분에서 이겼다고 해서 본안도 당연히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본안에서 행정명령이 취소되지 않으면 효력정지 가처분도 당연히 효력을 잃는다.
방역패스 효력정지 가처분의 대상
이번에 의료계 인사들이 신청한 방역패스 효력정지 가처분의 대상은, 보도자료 등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효력정지 대상 시설: 식당, 카페, 실내체육시설, PC방, 도서관, 영화관, 마트, 백화점 (이하 "대상시설")
- 효력정지 대상 인물: 모든 국민
- 효력정지 대상 범위: 전국
즉, (1) 전국에 있는 (2) 모든 국민이 (3) 대상시설을 입장할 때 방역패스를 의무적으로 검사하도록 한 지난 2021. 12. 31.자 명령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멈춰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효력정지 대상 시설: (성인의 경우)마트, 백화점만, (12~18세의 경우)대상 시설 모두
효력정지 대상 범위: 서울특별시만
즉, (1) 성인의 경우 마트와 백화점 입장시 방역패스를 제시할 필요가 없어졌다(서울시 한정). (2) 12-18세의 경우, 모든 종류의 대상시설을 입장할 때 방역패스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
법원은 결국, 마트와 백화점에 일률적으로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것은 나중에 사업자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5일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된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에 이어 마트와 백화점에 대한 방역패스의 효력이 정지되었다. 결국 현재까지 방역패스의 효력이 정지된 다중이용시설은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마트, 백화점이다. 12-18세 청소년의 경우, 이 외에도 추가적으로 식당, 카페, 실내체육시설, PC방, 도서관, 영화관 등에서의 방역패스 제시의무가 면제된다.
방역패스 효력 정지 향후 전망
법원이 잇따라 방역패스의 효력정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주된 이유는 역시, '방역패스의 도입으로 인해 얻게 될 공익은 모호한 반면 사업자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예상된다'라는 것이다.
솔직히 정작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되는 자영업자들에 대해서는 방역 패스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면서,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대해서는 방역 패스가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예상된다'고 보는 법원의 태도가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우습게도 백화점들의 매출액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해 오히려 크게 성장했다.
그래서 나는 방역패스를 효력정지하는 것이 옳냐 그르냐를 논하기 전에 법원의 이번 결정은 굉장히 근거 없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회복할 수 없는 손해' 운운하며 식당, 카페와 같이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될 사업자들에 대해서도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해 줬다면 논리의 일관성이라도 있었을텐데, 사업자들의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하면서도 정작 실증적으로 매출이 대폭 하락한 식당, 카페 등 주요 자영업 업종에 대해서는 여전히 방역패스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가 선뜻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실 법원이 이런 희한한 판단을 내리는 데 단초를 제공해 준 건 정부의 일관성 없는 방역정책이다.
가장 큰 사례로, 위드코로나는 중단하면서 헬스장의 샤워실 및 사우나 이용 제한은 깜빡 잊기라도 한 듯 그냥 무성의하게 풀어준 것을 들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우나에서의 코로나 감염률은 일반 사무실의 60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위드코로나를 중단하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쓸데없이 영업시간만 단축해 놓고는 사우나는 그대로 풀어줘 버렸다. 또한 예전 포스트에서도 지적한 대로 정부는 당초에 방역패스를 도입하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이 상식적으로 인파가 단기간이 급격히 몰릴 것 같지 않은 시설들은 방역패스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오히려 밀집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박람회에는 방역패스를 도입하지 않았다(현재는 모두 방역패스 대상이다).
이런 식으로 기준도 없고 근거도 없이 그냥 내키는 대로 행정명령을 내리니 법원에 가서도 답변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시설에 대해서만 방역패스를 도입한다면, 해당 시설이 방역패스 미적용 시설에 비해 더 위험하다는 근거 또는 미적용 시설이 덜 위험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근거도 없이 어디는 도입하고 어디는 도입하지 않는 식으로 되는 대로 행정명령을 내리니(심지어 위에서 말한 대로 사우나 같은 특정 시설은 코로나 감염에 훨씬 취약한데도 정작 사용 금지를 걸지 않았는데, 사용금지를 걸지 않는 데에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법원에서 보기에는 정부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익형량도 하지 않고 방역패스를 마구잡이로 시행하고 있다고 비춰질 수밖에 없다.
방역정책에 '과잉대응'은 있을 수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잉대응을 하려면 일관성 있게 과잉대응을 하고, 그게 아니면 일률적인 기준은 세워야 할 것 아닌가.
법원이고 정부고 방역 정책에 있어서는 한심하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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